그곳에서의 모든 날이 평화로웠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겠지만 이따금은 그런 날이 있었다. 이상하게 훈련도 순조롭고, 다른 동기들은 각자 개인 일정을 하거나 쉬러 가고, 그래서 고요하고 조용한 날. 그럴 때 웨이의 옆에는 으레 흑표가 있었다.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제사 그런 날을 되짚어 보면 흑표가 옆에 없는 게 드물었다. 그래서 그 시절의 위안은 그로 쉽게 환원되었다. 웨이가 그를 존경하고 잘 따르던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. 세상 일은 의외로 ‘별개’가 많은 것을 대체할 수 있었다. 웨이의 평온을 은유하면 흑표가 되는 것처럼.
그날은 날이 좋아서 흑표가 나간 외부 훈련에 그도 따라나섰다. 어느 들판이었는데 군 부대가 산에 입지를 두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의외였다. 그날 웨이는 들판이라는 것을 처음 보았다. 바람이 달릴 때마다 풀들이 밟히고 흔들려서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. 한 번도 바다를 본 적 없는 그는 들판이 곧 바다일까, 하며 상상에 잠겼다. 녹색 파도가 치면 흰 별 같은 포말이 피어나고 짧은 검은 머리카락이 나부끼니 지금 밟고 있는 게 흙이 아니라 모래톱 같았다. 웨이가 말없이 산에 가로막힌 지평선을 바라볼 때쯤 흑표가 입을 열었다.
율스.
예.
무엇을 보고 있지.
그 말에 웨이는 천천히 바다로부터 돌아왔다. 옆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그는 대답했다.
바다를 상상하고 있었습니다.
바다라.
흑표는 잠시 그 검은 머리통을 내려다보았다. 이 훈련생은 가끔 이렇게 먼 곳을 보는 눈을 했다. 풍선처럼 매여 있는 것을 한 번씩 매듭지어 주는 게 그의 몫이었다. 흑표는 바다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말을 곱씹으며 들판으로 시선을 옮겼다. 그에게 들판은 그냥 평지였고 결코 바다는 될 수 없었다. 그런 상상을 하다니 나약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소리내 말하지는 않았다. 아주 가끔, 해가 이렇게 들면 그래도 될 것 같았다.
느린 바람이 그들을 훑고 지나갔다. 누구의 것인지 모를 검은 머리카락이 점점이 나부꼈다. 웨이는, 왠지 그러고 싶어서, 엷게 미소지었다. 그런 날이 있을 수도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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