부대가 전멸했다는 소식이 들불처럼 군영을 달렸다. 흑표는 그 소식을 가장 먼저 접했다. 자신이 가르친 부대가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몰살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그는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. 죽고 사는 것은 그에게 해가 지고 뜨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었고 그게 누구라 한들 마찬가지였다. 다만 바다에는 한 번쯤 가보고 싶었다고 말하던 이까지 죽은 것은 조금 의외였다. 그는 사망 처리서에 서명을 하다가 검은 단발을 한 사람 페이지에서 잠시 손을 멈추었다.
웨이는 영특했다. 빛을 다룰 줄 안다는 건 군에서 양 손을 들고 반길 일이었다. 하지만 그가 주목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. 흑표는 그런 일차원적인 것이 아니라 웨이의 태도, 그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눈길을 두었다. 바다를 상상하면서도 두 다리는 들판에 꼿꼿하게 붙이고, 먼 곳을 보면서도 부르면 금방 고개를 돌렸다. 나약하고 흔들리되 부러지지는 않았다.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. 자고로 고목보다 오래 살아남는 게 갈대인 법이었다…… 그러나 웨이의 사진 위에는 사망을 뜻하는 붉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. 이제 흑표는 거기에 서명을 해야 했다.
그건 정말이지 너무나 쉬웠다. 펜이 종이를 달리며 그 궤적마다 잉크를 남기는 건 흑표가 검을 휘두르고 그 곡선마다 피가 튀는 것과 무엇 하나 다를 게 없었다. 그 길이 지나가면 누군가가 죽게 된다는 것까지도 똑같았다. 그래서 흑표는 하루에도 몇 명을 죽였다. 그에게 사사받은 이들조차 이따금은 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. 들판에 서서 바다를 보던 웨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.
그러나 그는 그 쉬운 일을 앞에 두고 가만히 그 사진을 내려다보았다. 짧게 친 검은 머리카락이 햇빛 아래에서 어떻게 빛나는지, 어떤 색을 하는지, 그래서 바람에 날릴 때는 어떤 선을 만들며 나부끼는지 그는 알았다. 그것이 그의 죽음에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. 이 둘은 기차 선로처럼 상충했고 흑표는 만년필을 손에 쥔 채 도장 아래 깔린 시체를 쳐다보았다. 그 시체는 꼭 살아 있는 것만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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